검사들이 또 들고 일어났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한 반발의 성격이 짙다. 8년 전인 2012년에도 검란(檢亂)이 있었다. 당시 검사들은 현직 검찰총장을 상대로 연판장을 돌리며 ‘물러나라’는 사인을 보냈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 두 번의 검란과 모두 연관돼 있다. 우선 2012년 11월 검란부터 들여다보자. 8년 전 검란은 ‘공안통’ 한상대 검찰총장과 ‘특수통’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의 대결이었다는 게 중론(衆論)이다.
 
어느 두 검사의 비위 의혹으로 시작된 이때의 검란은 한상대 검찰총장의 사퇴로 종지부를 찍었다. 2012년 검란은 한상대 총장이 추진하려고 했던, 이른바 검찰 개혁안 중 하나인 대검 중수부 폐지에 반기(反旗)를 든 특수통 검사들의 승리로 해석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최재경 중수부장과 함께 ‘반(反)한상대’ 노선을 걷고 있었다. 여기엔 훗날 검찰총장을 지낸 채동욱 대검 차장도 보조를 맞췄다. 세 사람 모두 특수통 검사로 분류됐다.
 
윤석열 특수1부장은 한상대 총장의 입노릇을 하던 대검 대변인실을 대신했다. 윤석열 부장은 “일단 대검 차원에서 오전 중에 검찰총장(한상대)의 용퇴를 관철시킬 테니 각 지검 차원의 집단행동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을 검찰 내·외부에 전달했다. 고검장 출신 인사 A씨는 당시 윤석열 총장에 관한 일화를 지난 4월 기자에게 들려줬다. A씨의 이야기다.
 
“2012년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둘러싸고 검찰 내부에서 한상대 검찰총장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적이 있습니다. 검사들은 중수부 폐지를 결정한 이명박(MB) 정권의 행태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피력하며 한상대 총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이죠. 명백한 항명(抗命)이기도 했고요. 그때 윤석열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었습니다. 윤석열 부장은 큰 틀에서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한편, 후배들을 다독거리며 ‘검찰의 위신에 손상이 가해져선 안 된다’고 달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상하(上下)의 신망을 잃지 않으면서 조직에 윤활유를 칠하며 이끌어나가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A씨는 윤석열 총장이 2019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나는 정무 감각이 없다’고 말한 것을 예로 들며 “이게 정무 감각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윤석열 부장이 기민한 정치적 역량을 바탕으로 2012년 검란 당시 검찰 조직을 아울렀다는 얘기다.  
 
윤석열 부장이 최재경 중수부장과 궤를 같이 한 데에는 대검 간부는 물론, 일선 평검사 상당수가 한상대 총장의 검찰 개혁안에 우려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미 그 1년 전인 2011년 6월 부산저축은행 사건 당시에도, 대검 중수부 폐지 얘기가 정치권에서 흘러 나왔다. 당시 우병우 대검 수사기획관(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노승권·윤석열 중수부 과장, 윤대진 검사 등 중수부 핵심 간부들은 중수부 폐지 방침에 반발하는 차원에서 저축은행 수사를 일시 중단했다. 그후 이들은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인근의 한 호프집에 모여 통음(痛飮)을 했다고 한다. 윤석열 총장을 비롯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이 검찰 조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다.
 
2020년 검란은 2012년과 다른 양상이다. 지금 검사들은 사상 유례 없는 세 번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한 추미애 장관을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 커밍아웃을 한 검사만 230여 명이 넘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추미애 장관은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대리인 격이다. 그런 측면에서 검사들은 추미애 장관이 아닌 정치권력과 전면전을 벌이는 셈이다.
 
이를 바라보는 윤석열 총장은 어떤 심경일까. 8년 전엔 검란의 한 축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검란의 한 복판에 놓여 있다. 그때는 특수1부장으로 운신의 폭이 제법 넓었다. 하지만 지금은 검찰의 총수다. 한쪽의 입장만 대변할 수 없는 처지다.
 
윤 총장이 문재인 정권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고 해도, 정치권력에 반기를 드는 검사들을 두고만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권에 의해 검찰 조직이 와해되는 것 역시 윤 총장으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윤석열 총장은 일단 검찰 내부 조직 다지기에 주력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 듯하다. 윤석열 총장은 지난 29일 대전고등검찰청을 방문한 데 이어 다음 달 3일 충북 진천에 있는 법무연수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31일 YTN 보도에 따르면, 윤 총장은 신임 부장검사들을 소집해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상은 지난 8월 인사에서 부장검사로 승진한 사법연수원 34기 등 신임 부장검사 30여 명이다. 진천 법무연수원엔 '검·언 유착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돼 추 장관 지시에 따라 감찰이 진행 중인 한동훈 검사장이 근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윤 총장의 지방 순회 일정이 검사들을 다독이기에 충분할지는 미지수다. A씨의 말이다.
 
“일선 검사들도 윤 총장에 대해 불만이 있을 겁니다. ‘검찰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총장은 뭐하는 거냐’ ‘국정감사에서 그랬듯이 말로만하지 말고 이젠 뭔가 행동을 보여달라’ 뭐 이런 반응들이 있을 거예요. 추미애 장관을 겨냥한 일선 검사들의 반발을 달래려면 윤 총장도 비상(非常)한 행동에 나서야 할지 모릅니다.”
 
A씨는 “검찰이든 군(軍)이든 국가 권력이 특정 조직을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범죄시해선 안 된다”며 “어느 조직이나 문제는 상존한다. 그걸 가지고 조직 전체를 매도하니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혁은 물 흐르듯이 하는 거지, 권력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해선 곤란하다. 권력에 의한 정치적 목적이 개입한 개혁엔 반드시 부작용이 뒤 따른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