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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친일 의혹 3대 쟁점은...

정 총리, 안익태 친일행적 조사 후 “애국가 곡조변경 검토하겠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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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4년 안익태 선생의 유족들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안익태 대한국 애국가 자필악보’.

정세균 국무총리가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의 곡조변경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안익태는 나치독일과 제국주의 일본을 옹호했고 전쟁선전에 앞장섰다”는 주장에 이같이 답했다.
 
정 총리는 “만약 고증을 통해 친일여부가 확인이 된다면 그런 문제(애국가 곡조를 바꿔야한다)도 고민해봐야 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장기간동안 국가로 불렸기 때문에 국민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의논하는 절차가 선행되는 게 옳다”고 답했다.
 
《월간조선》은 역사학자 김형석, 음악평론가 김승열의 발굴과 기고를 통해 여러 차례 안익태의 친일 논란을 다루었다. 이와 관련, 안익태의 친일논란 3대 쟁점과 반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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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안익태가 일생의 역작으로 자부했던 작품인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 에텐라쿠(越天樂)>(1938)는 일왕(천황)을 찬미하는 노래다.
1959년 이를 ‘강천성악(降天聲樂)’으로 교묘하게 제목만 바꿔 대한민국을 농락했다.

‘에텐라쿠’나 ‘강천성악’의 의미로 볼 때 ‘하늘로부터의 선물’로 이해하는 견해가 한민족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며, 한국 신화나 설화 및 조선조 음악관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  ‘에텐라쿠(越天樂)’와 ‘강천성악(降天聲樂)’의 의미가 ‘하늘에서 내려온 음악’이란 점에서 일왕(천황)을 찬미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서기 794년 출범한 헤이안 시대에 처음 등장하는 ‘에텐라쿠’의 기원은 그보다 30~50년 전 활동한 통일신라시대 거문고 명인 옥보고(742~765년 경덕왕 때 음악가)의 ‘강천성곡(降天聲曲)’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친일 시비론자들은 간과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음악’인 ‘강천성곡’의 뜻이 그대로 ‘에텐라쿠’의 의미로 옮겨가지 않고서는 이 같은 의미상 일치는 불가능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음악’인 ‘강천성곡’이 (한반도) 하늘을 넘어 일본열도에 상륙하면서 ‘하늘을 넘어온 음악’인 ‘에텐라쿠’로 탈바꿈됐지만, 통용되는 뜻만은 ‘강천성곡’과 똑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음악’으로 유지됐다는 데에 ‘에텐라쿠’의 비밀이 있다.
 
안익태는 이 비밀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강천성악’은 옥보고가 작곡했다는 거문고곡인 ‘강천성곡’을 모르고서는 붙일 수 없는 제목으로 ‘에텐라쿠’를 포괄하는 상위개념으로 작곡했다.
 
따라서 안익태는 ‘에텐라쿠’가 ‘강천성곡’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했고, 이 같은 이유에서 훗날 자신의 대표작 ‘야상곡과 에텐라쿠’를 ‘강천성악’이라 명명한 것이다.

‘에텐라쿠’는 일왕 찬양곡? 실체는

안익태의 친일행적을 문제삼는 이들은, 안익태가 일본의 고대 아악인 ‘에텐라쿠’의 선율을 차용했고, ‘에텐라쿠’의 실체가 일왕 찬양곡에다 일왕 즉위식 때 축하작품으로 연주된 곡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아악회 홈페이지의 ‘에텐라쿠’ 항목을 살펴보니 이 같은 곡 해설은 사실무근이었다. ‘이 작품은 일본 아악 중 가장 잘 알려진 곡이고, 요즘에는 연주회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악곡이지만, 헤이안 시대(794~1185) 무렵에는 연주 기회가 한정적이어서 불교행사에서 연주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고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일본 위키피디아 사전에도 ‘결혼식 때 자주 연주되는 곡’이라고 소개된 게 전부다. 김승열 음악평론가가 소장하고 있는 《에텐라쿠》 음반 3종의 내지 해설서 어디에도 이 같은 곡 해설은 없다.
 
그렇다면 이 같은 왜곡의 최초 발원지는 어디일까.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던 고(故) 노동은(1946~2016) 교수가 쓴 《친일인명사전》(2009)의 ‘안익태’ 항목으로 추정된다. 친일인명사전 안익태 편에서 노동은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원래 에텐라쿠는 일본 천황 즉위식 때 축하작품으로 연주된 것이다.’
 
노동은은 이 같은 근거 없는 주장을 이후 자신의 저서 《한국근대음악사론》(2010)과 유저(遺著), 《친일음악론》(2017), 《인물로 본 한국근현대음악사》(2017)에서 반복하고 있다.

단순히 일본 고대아악 중 하나인 ‘에텐라쿠’가 일왕찬양곡 + 천황즉위식 축하작품으로 둔갑한 배경에는 노동은의 이 같은 왜곡 날조가 똬리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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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부다페스트 연주를 마치고 로마로 떠나는 안익태 선생. (제공=안익태기념재단)

2 . ‘한국 환상곡(코리아 판타지)’이 이부쿠베 아키라(伊福部昭)의 ‘일본광시곡’에 자극받아 작곡된 것이다.
 
→  ‘한국 환상곡’은 림스키 코르사코프(1844~1908)의 ‘러시아 부활제 서곡’에 영향 받아 작곡되었다. 그 직접 증거를 《월간조선》 2019년 1월호에 처음 소개했다.
 
수필가이자 번역문학가인 한흑구(韓黑鷗·1909~1979) 선생은 수필집 《인생산문》(1974)에 안익태와의 인연과 함께 ‘한국 환상곡’을 작곡한 안익태의 말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1933년 어느 봄날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본 뒤 안익태는 “나도 지휘자가 되어 볼 결심이야. 또한 한국광상곡(‘한국환상곡’과 같은 의미로 추정된다)도 하나 작곡하고”라고 한흑구에게 말한다. 다음은  수필집 《인생산문》의 한 대목이다.
 
“이 사람, 한(흑구)! 나는 어제 저녁 스토코브스키의 심포니에 가 보았네. 참으로 귀신같애! 작품은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되는 러시아계의 청년이 작곡하였다는 것인데, 곡명이 러시아 광상곡(狂想曲)이야! 처음엔 러시아 제정시대(帝政時代)의 한가로운 시대를 그렸는데, 느릿한 템포로 시작하고,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노래 같은 것도 나오고, 구루마 바퀴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나오고, 이러다가 제정이 부패해 가는 음탕한 음조로 차차 변해 가. 그러고는 러시아의 혁명가인 듯, 트럼펫 소리, 슬라이 트럼퍼가 마치 만세라도 외치는 듯이 굉장히 우렁찬 소리로 변해 가네.

이때 지휘자 스토코브스키의 팔이 얼마나 빨리 휘도는지 열두어 개나 되는 것같이 쉴 새 없이 막 휘돌아가는 거야! 나도 지휘자가 되어 볼 결심이야. 또한 한국광상곡(韓國狂想曲·‘한국환상곡’과 같은 의미로 추정된다. 한흑구는 아래에 ‘코리아 환타지’ 옆에 ‘한국광상곡’이라 적었다-편집자)도 하나 작곡하고.”
 
안익태는 1957년 11월 10일 자 미국 《찰스턴 가제트》 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환상곡’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환상곡’의 작곡 동기는 명확해진다.
 
3 . 안익태는 나치 활동을 했다. 안익태가 1944년 4월 파리에서 히틀러 생일 경축음악회를 지휘했다고 주장한다.
 
→  안익태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처럼 나치당원이 아니다. 당시 17만명 넘게 가입되어 있었다는 독일 제국음악회원일 뿐이었다.
 
‘제국음악원에 가입한 것이 친나치’라는 주장이 있지만 “제국음악원의 회원은 17만 명으로 독일에서 활동한 음악가 대부분이 망라되었으며, 회원증에는 ‘제국 안에서 근로허가(지휘자 겸 작곡가)를 부여함’이라고 기재되었다. 한 마디로 독일에서의 취업허가증이었다. 안익태가 제국음악원 회원이 된 것은 유럽에서 음악활동을 계속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안익태가 1944년 4월 파리에서 히틀러 생일 경축음악회를 지휘했다는 주장이 있다. 히틀러의 생일은 정확히 1889년 4월 20일이다. 히틀러 생일 경축음악회가 성립하려면 그의 생일 당일인 4월 20일이나 그 전날인 4월 19일의 전야음악회를 지휘했어야 한다.
 
그러나 1944년 4월 19일과 20일에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히틀러 생일 경축음악회를 지휘한 사람은 카라얀이지 안익태가 아니었다. 카라얀은 나치당원에다 극렬 나치주의자이기에 히틀러 생일 경축음악회를 지휘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익태는 살 플레이엘이라는 파리의 다른 연주회장에서 1944년 4월 14일과 18일, 21일에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베토벤 페스티벌을 주재했을 뿐이다. 당시 프로그램 또한 보유하고 있는 김승열 음악평론가에 따르면, 그 어떤 히틀러 생일 경축음악회라는 언급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 독일 후기 낭만파 음악의 거장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는 안익태의 스승이었다. 두 사람은 정치적인 고려가 아니라 안익태의 실력을 보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슈트라우스는 나치 치하 시절, 유대인 며느리와 손자들을 지키기 위해 제국음악원 초대 총재를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슈트라우스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송가를 작곡하는 등 사실상 나치에 협력했다. 그러나 나치가 유대인 음악가인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대체할 만한 작품을 만들라고 강요하자 제국음악원 총재를 그만두었다. 예술가로서의 양심을 지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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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 표절논란은 1977년 1월 29일자 《조선일보》 5면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밖에 “안익태의 ‘애국가’ 곡조가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표절한 것이어서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와 관련, 애국가 표절논란은 1977년 1월 29일 《조선일보》 5면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당시 문공부는 "명확한 근거없이 표절여부를 논의함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다음은 《조선일보》 기사다.
 
"애국가(愛國歌)의 불가리아민요(民謠) 표절설은 사실 아니다"
 
▽…안익태(安益泰) 작곡 애국가(愛國歌)의 불가리아 민요 표절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의 본격적인 발단은 작년(1976년) 10월 이유선(李宥善·66·전 중앙대 교수)씨의 저서 「한국양악백년사(韓國洋樂百年史)」가 모신문 지상에 소개되면서부터. 그 책에 실린 「그의 작곡으로된 현 우리 애국가는 1937년경 불가리아에 여행시 얻은 멜로디를 살린 것으로 알려져 한때 잡음이 컸었지만…」의 대목 때문이었다.
 
▽…1963년 제2회 서울 국제음악제에 초청됐던 불가리아 지휘자 페터 니콜로프가 애국가를 듣고 자기 나라 민요와 비슷하다고 한 것은 사실이었고, 어느 정도 소문도 돌았었지만 그동안 덮여왔던 것이 새심스럽게 신문에 보도되며 공공연해지자 안익태기념사업회(회장 李永世) 측이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것.
 
▽…기념사업회는 우선 이씨에게 내용 증명을 요청, 이씨로부터 애국가의 1, 2 소절과 비슷하다는 문제의 민요라는 O! DOBRUJANSKY KRY의 악보를 입수, 전문가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결과 모방이 아니라는 얘기였는데, 악보의 출처 또한 확실한 것이 아니었다. 이씨는 미국인 웨이드씨(氏)에게서 악보를 얻었고 웨이드씨(氏)는 1962년경 미 캘리포니아 음대에 다니던 불가리아계 미국인 음악가 보리스 클레멘리프에게서 그 민요의 멜로디를 얻었다는 데, 지금은 클레멘리프라는 이의 생사(生死)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
 
▽…이와 함께 안익태씨가 1936년 미국에 살고 있던 그의 친구 마가렛 로스 부인에게 보낸 애국가 악보가 발견됐다. 「안익태 근작 대한국애국가(大韓國愛國歌)—1부에 20센트—미국 상항(샌프란시스코를 말함) 대한인 국민회 발행」이라고 한자와 한글, 영어로 표지를 단 이 출판된 악보에는 주는 사람과 받을 사람 이름과 함께 1936년 2월 5일이라는 사인이 들어 있었다.
 
▽…이상의 증빙서류를 첨부하여 관계기관에 해명을 요청한 기념사업회는 지난 18일자로 「…현행 애국가가 30여년간 모든 의식에서 국가역할을 해왔음을 감안할 때 명확한 근거없이 표절여부를 논의함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는 문공부 장관의 회답을 받아 26일에 있었던 음악협회 총회에서 경위를 밝혀 한 때의 소동은 일단락됐다.

입력 :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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