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천국' 일본, 41년 만에 ‘잡고서저(雜高書低)’ 붕괴 : 월간조선

구글로 검색해 본 일본 잡지들

‘잡지천국’ 일본은 종이매체의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도쿄에 본사를 둔 출판과학연구소는 ‘2016년 출판물 판매상황’을 발표했다. 책과 잡지의 판매금액(추정)은 전년 대비 3.4% 감소한 1조4709억엔(한화 15조 1655억원)으로 12년 연속 하락했다. 41년 만에 잡고서저(雜高書低·잡지가 책보다 많이 팔리는) 현상이 처음으로 붕괴됐다.

이 연구소에 따르면 잡지는 전년(2015년) 대비 5.9% 줄어든 7339억엔(7조 5568억원). 서적은 0.7% 줄어든 7370억엔(7조 5891억원)으로 집계됐다. 책 판매가 잡지를 웃도는 현상은 1975년 이후 처음이어서 잡지업계는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책은 《천재》, 《편의점 인간》 등 2016년 한 해 동안 베스트셀러가 많았으나 잡지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미디어 영향으로 하락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전자출판 시장이 1909억엔(1조 9650억원)으로 전년 대비 27.1%가 증가했다. 종이출판과 전자출판을 합한 규모는 1조6618억원엔(17조 1096억원)으로 2015년 대비 0.6% 소폭 감소했다.

출판과학연구소는 “전자출판이 종이출판 시장을 보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제 잡지는 안 되는 것인가?”

일본 출판시장은 전통적으로 ‘잡고서저(雜高書低)’로 요약할 수 있었다. 1970대말에서 시작해 80년대의 경제버블 시대, 그리고 현재까지 일본의 출판계는 잡지 매출이 책 매출을 웃도는 현상이 지속됐다.

현재의 출판·유통 시스템(중개 서점)은 이런 ‘잡고서저’를 전제로 형성돼 왔다. 잡지(정기 간행물)를 매주, 매월 대량으로 트럭에 실어다 전국 동네서점에다 보내는 방식에 기초한 이익구조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과거 수백만 부의 잡지가 팔리고 수천~수만 부의 책이 판매되던 시대에 형성됐다. 그러나 40 년 이상 이어진 잡고서저(雜高書低)의 시대가 끝나고 잡저서고(雜低書高)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원래 “서점에서 잡지를 정기적으로 구매한다”는 것 자체가 적어도 서구에서 보면 기이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지적이다. 서구권에서 잡지는 정기구독으로 집에서 읽는다. ‘서점(북 스토어)’은 글자 그대로 책을 사는 곳이라는 얘기다.

어떻게 팔릴지도, 누가 사 볼지도 모르는 잡지를 매주, 매달 서점에 보내고 있는 일본 잡지시장의 비즈니스 방식은 원래 위험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잡지 판매장소의 협소화와 유통 상의 고(高)위험성에 잡지위기의 본질이 있을지 모른다.

책과 잡지 판매 추이

‘잡지의 서적화’가 잡지 불황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잡지는 누가 사보는 걸까. 잡지는 원래 폭넓은 독자에게 흥미에 맞는 콘텐츠를 “내보내는” 미디어다. 그러나 콘텐츠 기호에 따라 “자신의 좋아하는 작가와 그가 쓴 작품 테마가 읽고 싶은 경우 잡지를 산다”고 말하는 독자가 있고 “이 잡지니 산다”는, 잡지 지명도를 보고 택하는 독자가 있다. 또 이전부터 잡지 읽기에 길들여진 “본래 잡지독자” 등 세 부류로 나뉜다. 이 중 잡지불황 현상은 “본래 잡지독자” 감소와 관련이 깊다. “좋아하는 콘텐츠가 있어” 잡지를 사는 독자는 일시적인 독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틈새는 있다. ‘잡지 불황’을 말하면서도 ‘잡지의 증쇄’ 현상도 목격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잡지 부활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잡지 증쇄는 한시적 현상이지 전체 잡지시장을 끌고 갈 만한 동인(動因)이 될 순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어쩌면 ‘잡지 증쇄’라는 표현 자체도 잡저서고(雜低書高)라는 표현의 하나일지 모른다. 이런 증쇄현상에 기대어 통상호보다 증간호, 특별호, 별책부록 등에 힘을 실어 잡지를 발간하는 업체도 눈에 띈다. 이를 두고 출판계에서는 ‘잡지의 서적화’라 명명한다.

※잡지 증쇄 사례

《문예 춘추》 2015 년 9 월호가 발매와 동시에 증쇄(아쿠타가와상[芥川賞] 수상작인 〈불꽃(火花)〉 게재)

《신조》 2015 년 10 월호가 4000 부 증쇄 (츠츠이 야스타카의 신작 〈모나드의 영역〉 게재)

《부인 공론》 2016 년 1 월호 1 만부 증쇄 (100 주년 기념호)

전자잡지의 성장, 어떻게 봐야할까

일본의 전자출판 시장은 2016년 현재 1826억엔(한화 1조8260억원)은 종이책 출판 시장의 12%다. 2013년 6%, 2014년 8.8%로 해마다 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2015년 현재 종이책 시장은 845억엔(8710억원) 감소한 반면, 전자서적 시장은 415억엔(4277억원)으로 증가해 전체 출판시장은 430억엔(4432억원) 감소했다. 2014년에도 비슷한 현상이 확인되는데 종이책 시장은 줄고(758억엔 감소) 전자책 시장은 늘었다(398억엔 증가).

전자서적의 증가가 종이책 시장의 감소를 흡수하지 못하고 출판시장의 총판매금액 감소는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다만 전자서적의 증가가 일반 전자잡지의 증가라기보다 일본 만화(코믹 단행본)와 관련이 깊다는 점에서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2015년도 일본의 전자잡지 시장규모는 242억엔으로 전년도 145억엔에 비해 1.7% 확대됐다. 그중 2014년 6월 서비스를 시작한 NTT도코모의 ‘d매거진’이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d매거진’은 일종의 전자잡지 무제한 읽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같은 사이트다. 월 400엔(4123원)으로 마음껏 잡지를 읽을 수 있다.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au(KDDI), BookPass, 소프트뱅크의 ‘뷰엔(viewn)’이 먼저 시작했지만 전자잡지 시장은 ‘d매거진’이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d매거진’의 서비스 확대로 전자잡지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