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이승만 대통령 55주기 행사 때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추도사를 읽는 내내 이 전 대통령을 ‘대통령’ 이 아니라 ‘박사’라고만 호칭했다. 이에 대해 비난이 빗발치고, 국회에서도 논란이 되자, 보훈처는 7월 25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올해 이승만 전 대통령 추모사는 행정사무관이 직접 작성했고, 따로 수정한 사람도 없다”고 보고했다. 추모사를 작성한 것은 행정사무관이고, 박 처장은 밑에서 써 준 추도사를 읽기만 했다는 변명이다.
보훈처의 변명을 들으면서 문득 박정희 대통령이 생각났다. 박 대통령은 밑에서 연설문을 작성해서 올리면, 본인이 직접 빨간 펜을 들고 연설문을 살펴보면서 자신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나 표현으로 바꾸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연설문은 박 대통령 자신의 생각이 담긴 연설문이 됐다. 1970년 8‧18 도끼만행사건이 있은 후 육군제3사관학교 졸업식 치사(致辭)에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표현을 집어넣은 사람도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이때의 치사는 서종철 당시 국방부 장관이 대독(代讀)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읽을 것은 아니지만, 자기 이름으로 나가는 연설문이기에 직접 살펴보고 북한에 대해 엄중 경고하는 의미에서 그런 강경한 표현을 집어넣은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행사장에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표현을 집어넣거나, 아예 준비해간 연설문을 제쳐 놓고 필요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1970년 11월 11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전국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 경진대회’에서의 일이다. 충북 청원에서 올라온 하사용씨는 공무원들이 써 준 원고를 밀쳐버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하사용씨의 발표가 끝난 후 박정희 대통령은 하사용씨의 손을 잡고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당신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산증인이십니다”라고 치하하고,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의 치사가 시작됐다.
“이 치사문은 인쇄된 것이니 가지고 가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 충청북도에서 오신 농민 하사용씨의 성공사례가 너무나 큰 감명을 주었기에 본인의 소감을 말하겠습니다.”
대통령은 준비했던 치사 대신 하사용씨의 성공담을 들으면서 받은 감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국정(國政) 전반을 만기친람(萬機親覽)했던 박정희 대통령이지만, 자신이 읽거나 자신의 이름으로 나가는 연설문은 직접 챙겼다. 필요하면 준비해 간 치사를 바꾸기도 했다.
박삼득 보훈처장은 도대체 얼마나 바쁘기에 자기가 읽을 추도사를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읽었다는 것일까? 그대로 읽기만 했어도 문제지만, 미리 읽어보았는데도 이승만 대통령을 ‘박사’라고 지칭한 데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했다면, 그것도 문제다.
그리고 국회에서 야당 의원이 이 문제를 따지고 들자 보훈처장을 변호한답시고, 일개 행정사무관에게 책임을 돌린 보훈처의 행태도 치졸하다. 설사 행정사무관이 작성했고 처장은 읽기만 했을 뿐이라고 해도 “책임은 내게 있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3성 장군 출신다운 처신 아니었을까?
한편 보훈처를 관할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재옥 미래통합당 의원실에 의하면, 2011부터 금년까지 10년 동안 이승만 대통령 추도식에서 보훈처장이 행한 추도사(대독한 경우 포함)사를 보면, 과거 9번 모두 '대통령님'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박사님'으로 칭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는 얘기다. 박삼득 처장의 전임자인 피우진 전 처장은 재임 기간 3년 동안 한번도 이승만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때문에 박삼득 처장의 참석은 눈길을 끌었고, 추도사 내용도 대체로 무난했는데 '박사님'이라는 호칭 때문이 빛이 바랬다.
보훈처는 이 논란과 관련해 7월 24일 "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가 박삼득 보훈처장의 ‘박사’ 호칭은 전혀 틀리지 않고, 전 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폄훼한 것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훈처는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문무일 사무총장이 7월 23일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박삼득 보훈처장과 면담을 갖고 박 처장이 추도식에 참석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는 한편 이번 ‘호칭’ 논란과 관련해 “‘박사’라는 호칭이 전 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전혀 폄훼한 것이 아닌데, 일부 언론에서 박삼득 처장님을 비판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기념사업회의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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