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소년병, “저희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닙니다. 국가가 인정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 월간조선

“6·25전쟁 당시 성숙하지 못 한 몸으로 24kg의 무거운 짐을 인 채 산을 오르내리고, 유혈이 낭자하는 처참한 장면을 목도하며 신체적·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입어야만 했습니다. 가장 큰 희생은 배우지 못 한 것입니다. 배우지 못 해 경제적으로도 어려우니 자식들을 제대로 교육하지도 못 했습니다. 소년·소녀병은 6·25 참전 자체를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국군의 일원으로서 참전을 자랑스럽고 명예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소년병을 인정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6·25 참전 소년병 김태성씨)

7월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25 참전 소년·소녀병들의 합당한 예우를 위한 간담회

7월 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미래통합당 정책위원회‧강대식 의원(대구 동구을) 주최로 ‘6‧25 참전 소년‧소녀병들의 합당한 예우를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나라가 어려울 때 소년·소녀병으로 참전한 분들을 (이제는) 국가가 마땅히 예우해야 한다”며 “당(黨)에서도 소년·소녀병 문제에 관심을 두고 힘껏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16대 국회부터 소년·소녀병을 예우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했으나, 소년·소녀병에 대한 정의, 국가 배상 문제, 다른 참전 유공자와의 형평성 문제, 예산 문제 등으로 잘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지난 《월간조선》 6월호에 실린 ‘6·25참전소년소녀병전우회가 문 닫던 날’ 기사를 보고는 “참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해 아쉬움과 죄송함을 가졌다”면서 “(21대 국회에서는) 국방부와 보훈처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결론을 내 더는 이 문제가 논의되지 않도록 해결해달라”고 했다.

이날 간담회 참석이 예정됐던 6·25참전소년소녀병전우회 윤한수 회장은 건강 문제로 참석 대신 편지를 통해 “21대 국회 국방위에서 6·25 참전 소년·소녀병에 대해 관심을 두어 놀랍고 반가웠다”며 “‘아직은 나라를 지킨 보람이 있구나’하는 마음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국가보훈처 오경준 국장, 국방부 이남우 실장, 6·25 참전 소년병 김태성씨, 김태열 회장

6·25 참전 소년병, “가장 큰 희생은 남들처럼 배우지 못 한 것”

윤한수 회장을 대신해 간담회에 참석한 6·25 참전 소년병 김태성씨는 소년·소녀병들이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신체적·정신적·학업적으로 피해를 보았다고 했다. 김씨는 “6·25전쟁 당시 성숙하지 못 한 몸으로 24kg의 무거운 짐을 인 채 산을 오르내리고, 유혈이 낭자하는 처참한 장면을 목도하며 신체적·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면서 “가장 큰 희생은 배우지 못 한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우니 자식들을 제대로 교육하지도 못 했다”고 했다. 소년병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국가가 공식적으로 소년병을 인정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소년·소녀병은 6·25 참전 자체를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국군의 일원으로서 참전을 자랑스럽고 명예롭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국가의 소년·소녀병 인정”이라고 했다. 이어 “참전 소년·소녀병의 노고를 국민이 알아주고, 소년·소녀병이 죽기 전에 예우가 인정되길 머리 숙여 부탁드린다”고 했다.

한국보훈포럼 김태열(영남이공대 교수) 회장은 “국가보훈의 개념이 1985년을 기준으로 바뀌었다”면서 “1985년 이전에는 (당사자가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는) 원호(援護)였다면, 그 이후는 국가가 먼저 찾아 나서는 책무인 보훈(報勳)이 됐다”고 했다. 김 회장은 “참전 소년·소녀병의 나이가 (평균) 87세에 이르러 초고령화돼 기대 여명(餘命)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입법을 위한 연구 용역 등의 절차를 거쳐 (신속하게 입법을) 추진하고 후손들에 교훈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국방부 인사복지실 이남우 실장은 “징집 대상이 아닌데도 어린 나이에 참전한 것 자체가 특별한 희생”이라면서 “국가 재정이 허용하고 다른 참전 유공자와의 형평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한에서는 보상이 필요하다는 게 국방부의 입장”이라고 했다. 이 실장은 “이번 회기에는 법제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가보훈처 보상정책국 오경준 국장은 “보훈 체계는 선양과 보상이 있다”면서 “선양 측면에서는 이분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후대에) 교육하고, 현충 시설을 통해 (소년·소녀병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 보상과 관련해서는 국회 정무위원회를 거치며 보상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국방부가 외면하는 소년·소녀병은 '징집 의무 없던 17세 이하의 사춘기 소년소녀들'

소년·소녀병이란, 만 17세 이하의 신분으로 징집 의무가 없음에도 군번과 계급을 부여받고 6·25전쟁에 참전한 이들 말한다. 군번을 부여받지 않고 입대한 학도의용군과는 다르다. 약 3만명(소년병 2만9603명, 소녀병 467명)이 참전해 2573명이 전사했다.

2011년 11월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연령별 참전자 수는 만 17세(1만5000여 명), 만 16세(7000여 명), 만 15세(3000여 명), 만 14세(1700여 명), 만 13세(1600여 명) 순이었다. 현재 소년병 약 2000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병은 현재 두 명이 생존해 있다.

국방부는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유엔 아동권리협약상 18세 미만은 징집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 때문에 국군 소년병·소녀병의 존재 자체를 쉬쉬해왔다. 2011년에야 소년·소녀병의 '실체'는 인정했으나, 그에 따르는 예우와 보상은 현재까지 없다.

‘6·25 참전 소년·소녀병 보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한 강대식 의원은 “16대 국회 이후 19년 간 소년·소녀병의 명예회복을 위해 여야 가릴 것 없이 법안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소년·소녀병 예우 법안이 통과돼 고령이 된 소년·소녀병에 대한 국가의 예우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률안은 ▲6·25전쟁 당시 병역 의무 대상이 아닌 사람으로서 징집되어 참전한 자를 소년·소녀병으로, 소년병 중 6·25전쟁이 끝난 후 병역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다시 징집된 소년병을 이중징집자로 정의하고 ▲소년·소녀병과 이중징집자, 그 유족의 보상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소년·소녀병 등 보상심의위원회’를 신설하며 ▲소년·소녀병 또는 그 유족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하되, 이중징집자에게는 보상금을 추가로 지급하는 내용을 담았다.

통합당 정경희 의원은 이날 간담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뒤 국방부와 보훈처 관계자들에게 “6·25 참전 소년·소녀병들을 위한 예우를 서둘러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