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대법원에 '한숨의 다리'가 있는 이유는? : 월간조선

한국의 국회에 해당되는 홍콩 입법회 의사당 모습.

[홍콩법조계 견문기 ④] 오늘은 간단한 아침식사 후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1시간 정도 수영 내지 물에서 걷는 운동을 했다. 전망이 좋고 시설도 잘 갖춰져 기분이 상쾌했다.

홍콩 대법원을 방문하기 위해 일찍 호텔을 나섰다. 인구 800만 명의 독립된 이 도시의 흥미로운 점은 대법원과 홍콩의 최고행정수반 시설인 정부종합청사가 같이 들어서 있다는 사실이다. 행정과 사법의 효율적 공조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래는 홍콩 사법부의 ‘종심 법원’을 대법원이라고 표현했으나 1997년 중국에 귀속되면서 영어명칭이 The court of Final Appeal로 바뀌었다. 중국본토의 대법원 명칭을 의식한 듯하다. 홍콩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4명의 대법원 판사로 구성되어 있으나, 재판시 영(英) 연방의 고위직 판사가 초빙돼 같이 재판에 참여한다. 주로 호주, 뉴질랜드 등의 영연방 국가의 고위직 판사를 초빙하는 데, 이는 영연방 국가의 ‘판결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판사는 초빙되지 않는다.)

연간 대법원상고사건은 120건 정도. 그중 40건 정도가 허가 상고제도에 의해 상고가 허락된다고 한다. 비교적 사건이 많지 않아 충분한 심리가 보장될 것으로 보였다.

대법원의 공식 안내원을 따라 청사 건물을 둘러보았다. 지붕부터 중국식 지붕과 서양식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과거 영국의 지배를 느낄 수 있는 건물문양도 눈에 띄었다. 영국 상징인 사자와 중궁 상징인 용 등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동서양의 문화가 잘 조화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한국의 대법원 격인 홍콩의 종심법원 입구모습.

‘한숨의 다리’라고 부르는 교각에 이르렀을 때 안내원이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형사피고인이 사형 또는 기타 형사처벌 형을 받게 되는 경우 한숨을 내쉬면서 걷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그 다리가 왠지 쓸쓸하고 사연이 많아 보였다.

건물내부가 좀 권위적으로 느껴졌다. 식민지인 홍콩현지인의 애환이 느껴졌다. 투어 중에 우연히 대법원장과 반갑게 조우하며 인사를 나눴다. 홍콩 대법원의 법정에도 앉아 보았는데, 작은 소리도 잘 들릴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있었다. 안내원은 “모든 재판과정은 녹음되기 때문에 스피커가 추가적으로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비교적 건물이 작았지만 빈틈없이 설계돼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대법원 도서관은 1만 권 정도의 책이 있는데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방이 과거 형사피고인이 재판정에 가기 위해 잠시 대기하던, 일종의 감옥시설이었다.

정년 마친 판사들은 봉사, 초빙 판사로 활동

이어 최근 퇴직한 대법원 판사인 ‘패트릭 찬’씨가 홍콩의 사법제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에 따르면, 홍콩의 판사는 모두 180명다. 일단 판사가 되면 다시 변호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상당히 인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필자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패트릭 찬 판사(오른쪽)와 필자.

-변호사를 못하게 법으로 규정하는지, 아니면 판사 스스로 그런 약속을 하는지 궁금하다.

패트릭 찬 “판사 임용 시, ‘판사 임용 후에 다시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한다. 왜냐하면, 판사를 한 후 변호사 활동을 하게 되면 종전 판사지위를 남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려 서약서를 받는다. 호주도 판사임용 후 1년 내에 그만두는 경우는 변호사를 할 수 있으나, 1년 후에 퇴직하는 경우는 변호사 활동이 제한된다.”

홍콩 법원이 판사들의 명예를 위해 전관예우 같은 비리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모습이 느껴졌다. 정년을 마친 판사들은 퇴직 후 어떤 일을 할까. 패트릭 찬 판사의 말이다.

“퇴직 후에는 주로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등 봉사활동을 한다. 저 역시 퇴임했지만 사안별로 파트타임으로 판사직을 수행한다. 거의 순차 배정방식으로 퇴임한 판사를 사안별로 초빙하여 재판부를 구성하여 재판심리에 관여한다.”
그야말로 평생법관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급심 심리는 중국어로 이뤄져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대법원 건물 아래로 지하철이 생기면서 지반이 약해졌다. 노후건물이 흔들리고 재판 도중 천정에 달린 전구가 떨어지는 등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결국 보강공사와 안전진단을 마칠 때까지 모든 재판업무를 중단하고 말았다.

패트릭 찬 판사는 과거 홍콩 대법원 판사들이 쓴 가발에 대해 언급했다.

“원래 가발은 프랑스로부터 도입 되었는데 당시 영국 왕이 쓰던 가발을 모방하여 쓴 것이다. 문제는 가발 세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가발에서 심한 악취가 나기 마련인데, 그 냄새의 정도가 판사경력의 척도가 됐다. 다만 1997년 홍콩 반환 후에 홍콩 대법원 판사는 더 이상 가발을 쓰지 않는다.”

덧붙여 “대머리 판사들만 아쉬워한다”고 해 함께 웃었다.

홍콩 판사는 정년이 있으나, 다만 건강상의 이유나 부패에 연루되지 않는 한 신분보장이 된다. 뇌물의혹 등의 경우는 3명의 판사로 구성된 재판부에서 심리해 징계를 결정한다. 홍콩 판사의 연봉은 “적정한 수준의 변호사들이 판사직에 지원할 수 있게 유도하는 수준에서” 정해진다고 한다. 다만 판사 퇴직 후에는 변호사 개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변호사들의 판사직 결정은 신중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1997년 홍콩 반환 후 지방법원의 경우는 거의 80%가 영어 대신 중국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홍콩문화에 스며든 중국의 영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하급심 심리의 경우 중국어가 많이 쓰이나 상급법원으로 갈수록 영어사용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찬 판사의 설명은 쉬우면서도 재미있었고 그 발음이 명확했다. 시간이 빠듯해 깊이 있는 대화를 못 나눠 아쉬웠다.

홍콩특별행정구 정부 청사 모습.

무한한 잠재력의 도시, 홍콩

오후에는 홍콩 입법회(한국의 국회)를 방문하였다. 홍콩 입법회 의원은 70명. 이중 35명은 지역구 의원이고 나머지는 직능대표로 구성되어 있다. 직능대표 중에는 실직자를 대표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입법회는 7~8월의 여름휴가를 제외하고는 매주 수요일 오전부터 저녁까지 입법회가 개원된다. 때마침 방문일이 수요일이어서 입법회 토론 내지 심의가 진행 중이어서 참관했다. 의사당 빈 좌석이 눈에 띠였다. 한국의 ‘식물국회’가 연상돼 질문했더니 안내원은 “홍콩 입법회 의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발언시간에만 나타난다”고 했다.

발언시간은 보통 8분. 최대 15분까지 연장이 가능한데, 모든 발언이 중국어로 진행된다. 다만 2층 관람석에서 영어를 비롯한 3개 언어를 들을 수 있는 동시통역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홍콩 의원의 연봉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일반 직장인의 평균연봉이 예로 들어 월 200만원 정도라면 입법회 의원들은 보통의 5배인 1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수행비서 등 2~3명을 고용할 수 있다.

그리고 홍콩의 우수한 학생 중에 공직자(공무원)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홍콩에서 공무원 인기가 여전한 것은 왜일까. 아무래도 사회 전반에 고용의 불안전성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며칠간 머무르며 홍콩의 무한한 잠재력을 음미하게 됐다.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고 국제통용어(영어)를 자유롭게 쓰는 나라, 현재 배후시장인 중국경기가 침체되고 중국과의 정치적 갈등으로 일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조만간 엄청나게 발전할 수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