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除夜)의 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재복과 행운을 상징하는 정해년(丁亥年) 새해가 밝았다. 수많은 인파(人波)가 밤을 밝히면서 새로이 열리는 2007년을 요란스럽게 맞았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서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詩人(박두진)의 바람이자 우리 모두의 염원인 「고운 해」가 솟았을까?
독도에서 솟아오르는 저 해가 한･일간의 격랑을 잠재울 수 있을까?

 

절에서 제야의 종을 치는 일본

 

일본에서도 제야(除夜)의 종을 친다. 우리처럼 ‘카운트 다운’을 하기 위해서 절에 모이기는 하지만 종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히 참배를 한다. (젊은이들은 도심에서 ‘카운트 다운’을 하면서 신년을 맞음.)
 종을 치는 횟수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우리는 33번을 치는데 일본은 108번을 친다. 사람이 끊어야 할 백팔번뇌(百八煩惱)를 의미하는 불교적인 의식이다.

 108번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지난 날의 번뇌를 떨쳐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라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자정이 되기 전에 107번의 종을 치고 마지막 한 번의 종을 새해를 맞는 순간(자정)에 마무리하기도 한다.

 

         “조그마한 불행이 유리창을 두드리고
         인간의 눈은 재(灰)의 슬픔으로 반짝인다.
         마지막 노래는 땅을 덮고
         어둠속에 성스러운 순간은 차츰 다가온다.” (中桐雅夫, 1919-1983)

 

신사(神社) 참배가 진정한 새해맞이

 

일본인들의 새해맞이는 정초에 신사를 참배하면서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것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하츠모우데(初詣)’라고 한다. 유명 신사(神社)에는 정초에 수백만 명이 참배하여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또 한곳의 신사만 가는 것이 아니라 3곳의 신사를 돌면서 참배하는 풍습도 있다. 이를 ‘산쟈마와리(三社廻り)’라고 한다.
 일본인의 일상적 삶에 깊이 스며들어있는 신사(神社) -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남자아이는 32일, 여자아이는 33일이 지난 다음에 할머니와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신사를 참배하여 건강한 발육과 행복을 기원한다.
 또 아이가 3세(남녀공통), 5세(남자아이), 7세(여자아이)가 되는 해의 11월 15일에 신사를 참배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도 남자는 25세와 42세, 여자는 19세와 33세 때에 액땜을 하기 위해 신사를 참배하는 관습도 있다. (박규태, 일본의 神社)

 

일본은 멧돼지(猪)의 해 -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10간(十干), 12지(十二支)를 쓴다. 정해년(丁亥年)이라는 말도 우리와 같다. 예를 들어 역사적인 대(大) 사건의 표기에 있어서도 임신난(壬申亂), 무신전쟁(戊申戰爭), 신해혁명(辛亥革命)등 간지(干支)가 사용되었다. 또 우리에게도 귀에 익은 고시엔(甲子園) 야구장도 1924년 갑자년(甲子年)에 준공된 것을 기념하여 그 이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정해년(丁亥年)이라고 하면서 돼지(亥)를 멧돼지(猪)로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돼지(亥)의 원조가 멧돼지(猪)이기 때문일까?
 일본사람들이 내린 정의를 보면 「일본에서는 돼지(亥)가 멧돼지(猪)로 쓰이지만, 간지(干支)의 원조인 중국이나,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해(亥)는 멧돼지가 아니라 돼지(豚)라고 한다.」고만 되어 있다.

 우리는 600년 만에 오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하며 ‘새해에 복덩이를 낳자’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러나 일본은 조용하다. 전문가들은 ‘근거 없는 속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기대치가 높은 게 현실이다.
 아무튼 돼지가 머리가 좋다는 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을 것 같다. 조지오웰(George Orwell, 1903~1949)의 소설, 동물 농장(Animal Farm)을 보자.

 

 <다른 동물들을 가르치고 조직하는 일은 당연히 돼지들의 몫이었다. 왜냐하면 돼지가 동물들 중에서 가장 총명하다고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돼지들 중에서도 '존슨'씨가 팔아먹기 위해 기르고 있는 '스노볼'과 '나폴레옹'이라는 두 마리의 젊은 수퇘지는 그 중 더 뛰어났다.>

 

 <밖에서 엿보고 있는 동물들은 인간과 돼지의 얼굴을 몇 번이고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나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돼지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조지 오웰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의 타락에 대해서 고뇌에 찬 경고의 목소리를 「동물농장」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세상에 내놓았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할 때 인간은 두발로 걷는(소설속의 설정)돼지일 뿐이다.’는 메시지가 돼지해에 더욱 와 닿는 말이다.

 

또한, 최영미 시인의 '돼지의 본질'도 되새겨 볼만하다.
<그는 자신이 돼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
그는 스스로 훌륭한 양의 모범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멧돼지 해를 맞은 일본-
멧돼지는 참으로 야성적(野性的)인 동물이라는데 어떠할까?
일본에 ‘멧돼지 무사(武士)’라는 말도 있다. 「오직 적진으로 내닫기만 하는 무사, 저돌적인 무사」를 일컫는다. 이는, 상황을 생각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사람을 말한다.
 멧돼지 해를 맞은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야성적(?)으로 덤벼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