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1. 문화

월간팝송이 선정한 초기 블루스 아티스트 13인 ①

[阿Q의 ‘비밥바 룰라] 블랙 뮤직의 발자취 : B.B.King, Muddy Waters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본문이미지
초기 블루스 기타리스트들. 왼쪽부터 로버트 존슨, B.B 킹, 알버트 킹.

지금은 폐간된 《월간팝송》에서 ‘블랙뮤직의 발자취’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한 일이 있다.
초기 블루스를 설명하며 당대를 대표하는 블루스 아티스트 13인을 선정했다.
 
본문이미지
월간조선에 게재된 특집기사 '블랙뮤직의 발자취'
초기 블루스는 리듬 앤 블루스로 곧 리듬 앤 블루스로, 리듬 앤 블루스는 역시 흑인음악의 큰 줄기인 소울로 발전하면서 동시에 엘비스 프레슬리를 탄생시킨 로큰롤로 또 다른 줄기를 뻗어나가 오늘날 록의 바탕이 되는 공을 세우는데 여기서 한가지 주시할 것은 1930년대로 넘어오면서 소멸되기 시작한 순수 컨트리 블루스는 20여년 정도 고난의 세월을 보낸 후 곧바로 국내 팬들이 록의 진수로 인정하는 브리티시 록의 모태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미 사그라진 컨트리 블루스가 재발견되게 되는 중요한 계기는 1960년대 초반에 들어오면서 백인들의 관심을 끌면서였다. 이것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백인 연주인들에 의해 발굴 되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도 록의 부흥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하드록, 애시드 록, 사이키델릭 록, 포크 록 등 이들 록의 뿌리는 바로 컨트리 블루스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곧 록을 하는 의식있는 백인 연주인들에 의해 블루스를 다시 배우고 그 주인공들을 찾게 만들었는데 단적인 예를 들어 세계 최고의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로 추앙받고 있는 애릭 클랩튼(Eric Clapton)은 “록은 항상 블루스로 되돌아가서 다시 충전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와 함께 재등장한 컨트리 블루스 연주인들은 드디어 그 오랜 고통의 세월을 뒤로 하고 전 세계 록 아티스트들의 스승으로 떠받들려지게 되는데 이렇게 세상에 소개된 늙은 블루스 연주인들은 이러한 록의 변천이 아니었으면 그들의 과거처럼 이름 모를 길거리에서 기타를 퉁기고 하모니카를 불며 생계유지를 하다가 죽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컨트리 블루스의 재발견은 자연 블루스 역사의 증인들을 대중앞에 끌어내게 되었는데 그들의 신상명세와 영향은 전설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블루스 초기 시대 아티스트들을 살펴본다.
 
본문이미지
로버트 존슨이 쓰던 보틀 네크.
Robert Johnson – 1900년대 초에 출생한 그는 20대 중반의 한창 나이 때 살해당했는데 블루스사상 최대의 거인으로 박력 있는 창법과 함께 새끼손가락에 병 머리를 끼워 비벼대는 보틀 네크(bottle neck) 슬라이드 주법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의 몇몇 블루스 전문가들은 그를 슬라이드 주법의 창시자라고까지 단정 짓고 있으나 이러한 주법은 이미 노예해방 직후부터 쓰여졌기 때문에 창시자보다는 명인이라는 표현이 옳다고 하겠다.
 
B.B.King - 국내에 가장 많이 알려진 블루스맨으로 미시시피 출신인 그 역시 고향에서 목화를 따고 흑인연가를 불렀는데 그는 숙부인 Washington White와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
본문이미지
B.B. 킹.
다. B.B는 Blues Boy의 약자로서 일렉트릭 블루스 기타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대학에서 블루스를 강의하기도 했고 죄수들의 인권문제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가 재발견된 것은 1968년 Fillmore West에 출연해 백인들의 광적인 환영을 받으면서였고 급기야 그래미상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Albert King - 당대의 블루스맨인 그는 B.B. King의 이복동생이다. 보통 기타의 현을 거꾸로 붙이고 왼손으로 기타를 치는데 ‘I'll Play The Blues For You’나 ‘I'm Ready’ 같은 곡들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인정받았던 곡이다.
 
그 역시 1968년, Fillmore West에서 Big Brother & Holding Company 와 함께 연주함으로써 불도저 운전사에서 블루스 스타로 변신했다.
 
본문이미지
왼쪽부터 슬리피 존 에스티스, 머디 워터스, 존 리 후커

Sleepy John Estes - 1904년에 테네시에서 출생한 그는 한때 행방불명되기도 했으나 1962년에 다시 발견되었다. 멤피스 블루스의 거인으로 섬세한 기타에 폐부를 찌르는 슬픔과 고통의 노래가 일품이었고 장님이기에 별명이 ‘sleepy’였다.
 
Muddy Waters – 1915년 미시시피 출생으로 Robert Johnson, Son House 등의 영향으로 기타를 만지기 시작, 1943년 무대를 시카고로 옮기면서 명성을 얻었는데 곧 시카고 블루스의 대표가 되었으며 블루스 리바이벌의 아버지로 불렸다. 그는 1983년에 사망했다.
 
본문이미지
라이트닝 홉킨스
John Lee Hooker
- 미시시피 출생으로 전후 블루스계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그의 기타 연주 또한 독자적인 것으로 재즈 연주가 Marshall Stearns는 “고풍스러운 기타 스타일, 즉 남북전쟁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기타 스타일을 그대로 전해주는 몇 안 되는 연주가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다. 록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Animals의 ‘Boom Boom’은 그의 대표곡이다.
 
 Lightning Sam Hopkins - 1912년 텍사스 태생으로 8세 때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에게서 기타를 배웠고 18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블루스에 심취했다. 전통적인 블루스 창법이 주 무기이며 재발견되기까지 길거리에서 몇 푼의 돈을 받으며 헤매기도 했다. 그는 60년대말과 70년대 초기의 많은 록 지망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순수한 재즈맨으로 자신이 겪어야만 했던 어려움에도 불구 재즈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졌던 인물로 꼽힌다. 그 결과, 지식인 계층도 소위 '흑인 예술'에 관심을 기울기 시작했다.
 

입력 : 2020.05.20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김태완 ‘Stand Up Daddy’

kimchi@chosun.com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