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는 국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우왕좌왕하며 대응하는 태도나,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이로울 게 없는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한 사례가 대표저기다. 하지만 일본이 왜 이렇게 ‘이상해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놀라운 점은 일본 내에서도 사회의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면에 대해 이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거나, 알아도 쉬쉬한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이런 현상이 시작된 것일까.
일본 특파원을 지낸 현직 기자가 쓴 《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였다》(행성B)는 현장 취재와 다양한 현지 언론 보도, 각종 통계 자료 등을 토대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일본 사회의 본질과 비밀스런 심층을 드러내 보여준다.
저자는 일본이 깊이 병들게 된 근원으로 고질적인 병, ‘자기 속박주의’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한다. 집단에 매몰돼 뭔가 어긋나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지금의 일본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각 장에서 다루는 9가지 키워드(배제 사회, 집단 사회, 억압 사회, 자기 속박 사회, 함몰 사회, 호족 사회, 종교 사회, 관례 사회, 자멸 사회)는 저자가 일본 생활과 취재, 연구를 통해 독창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이지메', '메이와쿠'에서부터 최근 일본 젊은이들의 내부지향성, 고령화, 세습과 파벌로 얼룩진 정치, 일본의 경제계 몰락 등 일본의 사회 현상을 심도있게 분석하고 있다.
이승철 저자는 현재 KBS 보도국 사회부 팀장으로서 법조팀을 이끌고 있다. 3년간 일본 특파원, 도쿄대 연구원으로 재직한 일본 전문가다. 직접 발로 뛰며 일본의 곳곳과 각계각층의 사람을 취재한 결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9가지 키워드를 토대로 ‘자기 속박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현장 취재라는 단단한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철저히 팩트를 기반으로 한 날카로운 저널리즘적 시각은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일본이 더 이상 미래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지만, 일본의 모델을 많이 참조했던 우리로서는 일본의 병을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일본을 단순히 ‘나쁜 나라’로 보는 반일이나 혐일의 태도를 뛰어넘어, 반면교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철 지음/행성B 출간/ 2020년 3월 30일 발행/392쪽/18,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