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孫命順·95) 여사가 7일 오후 5시 39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손 여사는 9년 전인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2015년 11월 22일) 때까지 65년 동안 부부의 연을 이어오며 고락을 함께했다.

조용한 내조로 YS를 든든히 지켜온 고인은 1993~1998년 대통령 부인 시절, 참모 아내들과의 모임을 모두 없앴고, 입는 옷의 상표를 모두 떼고 입을 정도로 구설에 오를 일을 만들지 않았다.

청와대 안주인이 되자 새로운 디자인의 식기를 쓰지 않고 전임자와 같은 디자인을 사용할 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야당 시절 손 여사는 손님 대접을 위해 하루에 한 말씩 밥을 했고, 당시 서울 동작구 상도동 집을 찾아간 사람들은 언제든 거제산 멸치에 된장을 푼 시래깃국을 먹을 수 있었다.

《월간조선》, 《여성조선》에 실린 고 손명순 여사에 대한 이야기를 부분 발췌해 소개한다.

1.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인 힐러리 여사가 떠올린 미세스 김 (여성조선 2003년 7월호)

<- (기자) 한국 정상들도 기억납니까.

힐러리 “우선 93년, 94년도에 재임중이었던 김(영삼) 대통령과 미세스 김(손명순 여사)이 생각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언제 당선됐더라? 첫 번째 김 대통령 내외는 백악관을 방문한 적이 있고 우리는 서울 청와대의 손님이었던 적도 있지요. 당시 우리는 정말 따뜻하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미세스 김이 나와 같은 감리교 신자라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2. 악몽의 시나리오 김정일의 핵무장과 한국의 대응 1차 북핵위기를 돌파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충고 (월간조선 2003년 4월호)

<- (기자) 미국이 최종단계에 이르러 「북한을 치겠다」고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전까지 한미군사동맹은 완벽하게 작동했던 건가요.

김영삼 “재임 기간 동안 여덟 번인가 아홉 번인가 클린턴 대통령하고 정상(頂上) 회담을 했어요. 클린턴 대통령이 먼저 나를 찾아와서 청와대에서 조깅을 함께 했어요. 김대중씨 때하고는 완전히 달라요. 집사람(손명순 여사)이 힐러리 여사하고 정이 들었을 정도예요. 르윈스키 사건이 났을 때 집사람이 「힐러리가 불쌍하다」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1986년 9월 23일 김영삼 김대중씨와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경기도 벽제의 한 음식점에서 부부동반으로 만났다. 식사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양 김씨와 이 총재 . 사진=조선DB

3. 일요일 大選 유세를 중단시킨 손명순의 힘 (월간조선 2003년 2월 1일)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大選) 때 일요일 유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교회 장로입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 후보가 일요일에 선거유세를 하지 않는 결단은 기상천외하기도 하고, 파천황적인 발상이기도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요일 유세 중단의 가장 강력한 주창자는 손명순 여사였다고 합니다. 측근들은 물론 전원 반대였습니다. 『그런다고 기독교 표가 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종교의 반발을 사게 된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일요일 유세 중단은 독실한 신자인 손 여사의 결단에 의해 이뤄졌다는 게 김영삼 전 대통령 측근들의 일치된 설명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망설이자 손 여사가 거의 「윽박지르는」 현장을 목격한 측근도 있습니다.

영부인은 선출되지도, 임명되지도 않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영부인의 영향력은 누구보다도 막강합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사실상 휘두른 미국의 영부인도 적지 않았습니다. 카터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 여사는 국무회의에까지 참석했습니다.

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아내에게 큰소리 치면서 사는 남자들이 몇 안 됩니다. 아내를 호령하고 사는 듯한 남자들도 속내를 알고 보면 아내의 원격조정에 휘둘려 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4. 김영삼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밝힌 “나와 퍼스트 레이디들 사이에 있었던 일” (여성조선 2001년 3월호)

<“클린턴과 춤추기 거부한, 지조있는 나의 아내 손명순”

1993년 11월 23일의 한·미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북한 핵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면서 해결 방안을 둘러싼 그 동안의 논란을 정리하였다.

이날 저녁 우리 부부는 국빈 만찬에 초대되었다. 나와 클린턴 대통령 내외는 이스트룸에서 만찬 참석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이날 만찬에 초대받은 사람은 대략 150명 정도로 대부분 부부 동반이었다. 나와 클린턴 대통령 내외는 나란히 서서 참석자들에게 인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초대받은 여성들과 일일이 키스를 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백악관 여비서의 행동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힐러리 여사가 옆에 서 있는데도 여비서는 서슴없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다가가더니 손수건으로 클린턴 대통령의 입과 코를 닦아주는 것이었다. 클린턴 대통령도 뭐가 묻었는지 싶어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하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 그 여비서는 다시 다가가 클린턴 대통령의 얼굴을 한 번 더 닦아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만찬장을 정돈하는 사이 나와 클린턴 대통령, 그리고 고어 부통령 등 세 내외는 통로 옆 작은 방에서 잠시 대기했다. 만찬장에서는 왈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음악이 들려오자 갑자기 클린턴 대통령 내외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비서가 들어와 자리가 정돈되었다고 보고하는 바람에 클린턴 부부는 춤을 그쳤다. 춤을 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활달한 클린턴 내외의 다정한 부부애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만찬을 시작하면서 나는 나란히 앉은 힐러리 여사에게 “의료개혁안이 시행되면 미국 국민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됩니까?” 하고 질문 겸 인사를 건넸다. 힐러리 여사는 당시 미국의 의료제도 개혁을 주도하고 있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힐러리 여사는 자신의 의료개혁안에 대해 아주 상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커다란 열정과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3시간에 걸친 만찬 내내 나는 쉴 새 없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을 경청하느라 아쉽게도 다른 사람들과는 별다른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국빈 만찬을 끝낸 후 우리는 이스트룸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유명한 여자 오페라 가수인 제시 노먼의 공연을 관람했다. 제시 노먼은 ‘폴링 인 러브’ 등 6곡의 노래를 열창했다. 사실 이 행사에는 공개되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다. 만찬을 앞두고 클린턴 대통령은 외무장관을 통해 나에게 서로 상대방 부부와 춤을 추자는 제안을 해왔었다. 내가 아내에게 어떻겠냐고 물으니 아내는 깜짝 놀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한국과 미국의 사교 문화는 이처럼 차이가 큰 것이었다. 나는 미국측이 보내온 만찬 행사안 중에서 이 ‘파트너 바꿔 춤추기’만은 정중히 사양했다. 대신 우리는 단상에 올라가 특별 공연을 해준 미국 가수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

5. 직격 인터뷰 3시간 현 대통령에 정면 승부 건 전 대통령 (월간조선 2001년 2월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최근 손명순 여사와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당신 그때 나한테 반했제?』

『당신은?』

『나도』

일본 북해도(北海島) 여행중 있었던 이야기

『왜 당신 미인이라고 했어요?』(김 전 대통령이 일본인 초청 식사 때 참석, 한 일본 여자를 미인이라고 했다고 돌아오는 차 중에서 손 여사가 따졌다는 것이다)

『아니, 미인 보고 미인이라고 한 게 우째 잘못되었나?』

『그 여자가 미인이라면 우리나라 여자들 전부가 미인이겠소』>

월간조선 1996년 8월호 기사 캡처.

6.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의 청와대 근무 3년 5개월 "드디어 남편 월급이 내 통장에 들어와요." (월간조선 1996년 8월호)

<의기양양한 孫 여사

청와대 안에서 이뤄지는 소규모 오찬 모임에서 여사를 만났던 사람들은 소극적이고 전통적인 이미지의 영부인이 아니라 의지가 강하고 인내심 있고 적극적이기까지 한 손 여사의 모습을 본다고 한다.

지난 94년 어느 날 손명순 여사는 평소보다 훨씬 더 밝고 환한 표정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여성계 인사들을 맞아주었다. 그날 ‘의기양양하다 ’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환희에 찬 손명순 여사의 태도에 다소 의아했던 방문객들은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손 여사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털어놓았던 것이다.

"드디어 대통령의 월금이 제 통장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1년 넘게 그렇게 애를 써도 안 되더니…."

손명순 여사는 청와대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대통령의 월급에 관심이 많았다. 손 여사는 당시 홍인길 총무수석(현 신한국당 의원)에게 대통령의 월급을 자신이 직접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홍 수석은 손 여사의 뜻을 대통령에게 전했으나 김 대통령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손 여사는 어떤 조치가 취해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1년이 지나도록 대통령의 월급은 손 여사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내 여사가 직접 나섰다. 당시 한 신문에서 '남편의 월급이 부인의 통장으로 직접 들어가게 된 것이 우리나라의 여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손 여사가 이 기사를 화제로 꺼내 결국 김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낸 것이다.

손 여사는 94년 초부터 김 대통령의 월급이 들어가는 통장을 갖게 된 것은 물론, 급여 명세서와 현금으로 지급되는 대통령 활동비도 매달 받고 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인사는 그날 손 여사의 기뻐하는 모습을 얻을 수가 없다고 했다.

"손 여사는 40년 넘게 정치인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온 사람 아닙니까. 그 어려운 시절 그 힘든 역할을 다 해냈다는 것은 손 여사가 이 세상에 참지 못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손 여사는 그동안 생활비를 전부 시아버지에게 타쓰는 형벌이었으나 항상 죄송하고 미안하고 그랬답니다. 남편이 국회의원으로 받는 월급이 있다고 해도 주면 받고 안주면 못받는 식이었대요. 그러다가 남편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1년 넘게 노력을 한 끝에 비로소 자신의 등장으로 남편의 월급이 들어오게 됐다는 거예요."

孫 여사의 고집

청와대 쪽에서는 영부인의 스타일을 바꾸지 않고 '원래 하던 그대로 한다'는 방침 아닌 방침을 정한 것은 바람직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제는 국민들이 손 여사의 이미지에 익숙해져 더 이상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무엇보다 그렇게 하는 쪽이 영부인으로서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임 초기에는 '저런 식의 미소나 상냥한 태도는 너무 가식적이다'에서부터 '옷차림이며 헤어스타일, 화장이 어울리지 않고 세련되지 못했다', '영부인이 왜 그렇게까지 허리를 굽혀 절을 하느냐', '왜 두 손으로 악수를 하느냐' 등등의 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손 여사는 원래 모양을 내거나,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60대 중반을 넘긴 '할머니'가 새삼스럽게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영부인은 "예전에 하던 대로 하겠다"고 자신의 뜻을 밀고 나갔다. 그러나 손 여사도 역시 일부 국민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는 적잖이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가 두 손으로 악수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나서 손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도 두 손으로 악수를 하는데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에서 두 손으로 악수를 하는 것은 괜찮은 것 아닌가요"

두 손을 맞잡아 악수를 하는 습관 때문에 손 여사는 평소에 핸드백을 직접 들고 다니지 않는다. 비서나 주변 사람이 들고 있다가 손 여사가 차를 타면 핸드백을 건네주는 식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