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어령 선생의 2주기를 맞아 《월간조선》에 연재된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의 3번째 책인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파람북 간)이 출간되었다.

한국인의 얼굴 원형(原型)을 찾아가는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은 앞서 출간된 《별의 지도》, 《땅속의 용이 울 때》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별의 지도》가 하늘 천(天), 《땅속의 울음 소리》가 땅 지(地), 그리고 이 책이 사람 인(人)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로써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인 ‘천지인’ 이야기가 3권으로 완성된 셈이다.

아울러 선생이 남겨놓은 인생 최후의 역작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과 생명의 문을 여는 암호》, 《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너 어떻게 살래 :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등이 차례로 출간되었다.

기자는 지난 1월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탄 비행기가 곧장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고비사막을 지나 우루무치, 카자흐스탄, 아랄해, 카스피해, 흑해를 건너 캅카스 산맥 위를 날아올랐다. 캅카스 산맥을 내려다보며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밀려왔다. 2년 전 세상을 떠나신 이어령 선생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코카서스 산맥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캅카스 산맥이라고 부른다. 성경 창세기의 공간인 신화와 인간의 땅이다. 동서 문명의 기원이자 요람으로 대홍수 이후 노아의 방주가 도달한 곳. 성경에는 노아의 여덟 가족만이 살아남아 현생 인류의 유일한 조상이라 설명한다.

생전 이어령 선생은 “캅카스 산맥이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이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경계”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인 얼굴에 이 캅카스 산맥의 정기가 스며있을지 모른다.

아주 오래 전, 등을 세워 똑바로 선 채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벗어나(아웃 오브 아프리카) 나그네가 되었다. 한 발 한 발 미지의 땅으로 걸어 나갔다.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유럽의 캅카스 산맥까지 다다른 인류가 지금의 유럽인, 다시 말해 서양인이다. 요즘은 잘 안 쓰이는 말이지만, 백인을 뜻하는 ‘코카소이드’는 ‘캅카스(코카서스) 산맥까지 이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반면 아프리카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니그로이드’라 부른다.

황인종을 뜻하는 ‘몽골로이드’는 코카소이드보다 더 먼 여정을 택한 인류의 조상이다. 약 4만 년 전 시베리아 북쪽으로 북상해 바이칼호(湖) 근처에 갇힌 채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살아남은 극한의 사람들이다. 이 ‘신(新)몽골로이드’에 한국인의 얼굴이 담겨 있다.

생전 이어령 선생은 “한국인의 얼굴에 바이칼 호의 추위가 서려 있다”고 하셨다. 나그네가 되어 대장정을 떠나 영하 70도의 혹독한 시베리아 혹한을 견뎌낸 얼굴이다. 이 얼굴이 얼마나 놀랍고 자랑스러운가.

얼굴의 눈과 코는 추위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추위를 견디려 코는 더 낮아지고, 눈두덩은 두꺼워지는 진화를 선택했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얼굴은 쌍꺼풀이 없는 두툼한 눈, 튀어나온 광대뼈, 납작한 코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살을 에는 혹한 속에 한 발 한 발 내디뎌 한반도에 이른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얼굴이다. 한국인의 얼굴 속에 모험인자가 서려 있는 이유다.

이어령 선생은 “내가 모르는 그 이전의 역사, 맵디매운 추위를 견뎌내며 이 땅에 도달한 바이칼 호 나그네들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뛴다”고 하셨다. 요즘 젊은이들은 서양인의 얼굴을 닮길 원해 쌍꺼풀 성형도 하고 코도 오뚝하게 세운다.

그러나 바이칼호에 비친 한국인의 얼굴이야 말로 자랑스러운 훈장이고 인류 역경의 서사(敍事)가 아닐까?

이 얼굴은 단 몇 년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천, 수만 년을 거쳐 지금의 우리 얼굴에 도달한 나그네의 얼굴이다. 이처럼 얼굴에는 오랜 인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 이어령 선생은 이 책을 통해 내 얼굴, 우리의 얼굴 속에 스며든 한국인의 얼굴, 인류 문명의 얼굴을 찾고자 원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