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풍부한 10대 성장기 때 섭취한 지식과 교훈, 충격과 감명은 내 일생을 연면(連綿)히 좌우했다. 20대 6·25 전쟁에서 발휘된 용기와 정밀한 사고, 30대 나이로 일으킨 5·16혁명의 열정과 상상력, 이후 정치적 고비마다 난국(亂局)을 헤쳐나가면서 떠오른 영감과 지혜들은 그 시절 독서로 열고 다져진 내 정신세계에 차곡차곡 자랐다”

지난 23일 국회에서 김종필(金鍾泌·JP) 전 국무총리 5주기 추도식이 진행된 가운데, 국회도서관은 이날부터 내달 21일까지 ‘운정(雲庭) 김종필 기증 기록물 전시’를 연다. 직접 찾아간 전시 공간 벽면에 적힌 그의 어록에서 발길이 멈췄다.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이후 YS, DJ와 함께 3김시대(三金時代)를 열기까지 ‘영원한 2인자’로 남은 JP는 2018년 향년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격랑의 한국 현대사(現代史) 중심인물이었던 만큼 그의 젊은 시절 야망이 담긴 기록물들을 전시장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수많은 당선증과 임명장을 뒤로하고, 그가 남긴 ‘메시지’가 눈길을 끌었다. 누구보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왔던 그였기에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던 듯했다.

JP는 말년까지도 글을 썼다. 90세에도 언론사에 기고를 했고 생의 마지막 즈음이었던 2018년 봄에는 펜을 들지 못할 만큼 쇠약해진 상황에서도 구술(口述)을 통해 저서를 남겼다. 아래는 <남아 있는 그대들에게> 머리말 일부분이다.

〈저의 90 평생 성취와 오욕, 영광과 회한 속을 오가며 쌓이고 눅였던 이야기를 사랑하는 후생들에게 전하고 저의 삶의 무게를 가벼이 하고도 싶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의욕을 잃고 방황하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혼란 속에 지향성을 상실한 오늘의 젊은 정치인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북돋우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선 JP의 국회의원 당선 통지서, 제11대 국무총리 임명장 및 일지, 훈장, 도서 및 서예·회화 작품 등 400여 점을 볼 수 있다. 국회도서관은 김 전 총리의 유족과 김종필기념사업재단이 2019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JP의 의정활동 기록물 1712점과 도서 2939권을 기증했다고 밝혔다.

한편 JP에 관한 책들을 모아놓은 코너에서 그의 성정(性情)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여럿 나왔다. 그는 어렸을 적 소문난 책벌레였으며 고집이 셌다는 것이다. 그의 둘째형(김종익 전 국회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7형제가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아버지께 혼이 날 때도 유일하게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JP는 이때 서예를 배웠는데, 전시장에 가지런히 정돈된 지필묵과 반듯한 붓글씨가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했다.

글=김광주 월간조선 기자